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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형이전 귀금속공예 글에서 보았듯이, 장신구는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의 역사와 삶 속에서 함께 해왔습니다. 보석과 귀금속의 발견과 세공의 발전으로 시대마다 대표하는 양식과 특징들이 있는데요, 이 글에서는 인류의 처음에서부터 고대시대 비잔틴제국시대 중세시대의 귀금속공예 양식 역사에 대해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인류 장신구의 기원
장신구 역사는 다양한 재료와 방법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오면서 각 지역의 문화로 발전되었으며 인류가 탄생한 아래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장신구로 치장하는 행동은 인간의 기본 본성일 것입니다.
약 11만 년 전 구석기시대 모로코의 동굴에서 발견된 조개목걸이는 인류가 사용한 가장 오래된 장신구는 인체에 장식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을 거라 추정합니다. 장신구 외에도 부적의 용도도 있었을 거라 예상합니다.
고대인들은 돌에 구멍을 뚫거나 깎는 기술을 발전하면서 장신구의 종류도 다양해졌습니다. 그러나 형태의 모양의 균형을 다듬거나 단순히 표면장식을 덧붙이는 것 이상의 발전은 없었으며, 이후 인류가 금속을 발견하기 전까지 장신구에 대한 기술은 정체되었습니다.고대시대 귀금속공예
기원전 2000년 이전 귀금속공예
선사시대 귀금속 공예품은 고대 문명의 시작인 에게해(Aegean Sea)에서 등장했습니다. B.C 2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프리아모스보물(트로이유적)의 유물에서 그 당시의 귀금속제품과 보석세공을 볼 수 있습니다. 단일 금 조각으로 두드려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라 섬세한 왕관, 참, 팔찌 등에는 장식이 거의 없습니다. 크레타를 정복한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무덤에서 크레타 귀금속 유물이 많이 발견되었습니다.기원전 2000년 경의 귀금속공예
이 시기의 공예품에는 금으로 만들어진 장례용품, 술잔, 그릇, 상자 등의 제품, 은으로 만들어진 주전자가 많았습니다. 크노소스의 은식기 외에도 크레타와 그리스 본토에서 발굴된 이 시기의 많은 유물 중에는 이집트 문양으로 추정되는 금, 은 같은 귀금속이 박혀 있는 청동 무기가 많습니다.청동기-철기시대 귀금속공예
공예품의 품질이 저하된 시기인 과도기(청동기에서 철기시대로 가는 시기)의 대외교류 단절 때문에 출토된 문화유물이 소수에 이르렀습니다. 두드려서 모양을 내고 선각기법(파냄)으로 꾸민 페키니아의 은그릇이 있었고, 은에 선각기법을 활용한 에트루리아의 화장품케이스가 있었습니다. 기원전 4세기경에는 부조기법(튀어나오게)이 부활하며 로마의 은기를 시작으로 로마 말기까지 세심한 양식의 디자인이 지속적으로 출토되었습니다.비잔티움 초기유럽 귀금속공예
비잔티움의 초기유럽의 궁전과 교회는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될 만큼 부유했습니다. 기독교 상징은 대부분의 비잔틴장신구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더블 크로스 펜던트가 가장 먼저 등장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기능성을 지닌 버클(buckle), 클래스프(clasp), 브로치(broach) 등은 단순 기능적인 면에 디자인을 더해 장신구로써의 가치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형태로는 단순한 원반 모양의 브로치와 궁형 브로치가 있습니다. 고리형 브로치의 디자인은 주로 중간이 끊긴 원형 형태로 제작되었지만, 서기 650~750에는 완벽한 원형의 형태로 디자인되며 핀을 부착하는 방식으로 발전되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제품은 아일랜드의 금세공의 면모를 볼 수 있는 타라브로치가 있습니다. 금속에 에나멜 또는 유리와 호박으로 제작한 원형의 큰 브로치는 남자는 어깨에, 여자는 가슴에 착용하며 인기가 많았습니다.
중세시대 귀금속공예
초기 기독교시대의 귀금속 공예품 역시 망치질, 조각 등의 전통적인 공예기법을 사용했으며, 장식을 표현함에 있어서 로마와 그리스를 닮은 자연친화적인 우아함이 깃들여져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6-7세기의 금으로 제작된 왕관과 십자가를 볼 수 있는데, 장식에는 석류석이나 유리를 잘라 상감 또는 칠보와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중세 스타일은 세 단계로 구분되는데요,중세 귀금속공예 양식 첫 번째
중세 초기는 비잔틴 궁정의 영향력이 가장 컸던 시기인데요, 13세기말에는 유럽 건축을 지배하게 된 고딕 양식이 주얼리에 반영되어 중세 디자인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375년부터 섬세하고 부드러운 형태와 자연스러움이 더욱 강조되었습니다. 마지막엔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운동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새로운 주얼리 스타일이 출현한 15세기말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샤를마뉴의 부적이라 불리는 카롤링거왕조의 최고 귀금속공예품인 '성물함 펜던트'에서 종교 장신구가 중세 초기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중세 귀금속공예 양식 두 번째
13세기 후반에는 건축 양식과 닮은 것이 특징인 고딕시대양식이 금세공기법에 접목되었습니다. 프롱에 진주를 장착하고 가장자리를 감싸는 자연스러운 디테일과 부드러운 실루엣이 특징인 후기 고딕양식은 1375년경부터 발전했습니다. 14세기 초에는 인도, 페르시아 보석컷팅 기술이 발전하면서, 불규칙한 캐보션을 주로 사용하던 장신구에 각면이 컷팅된 보석이 접목되기 시작했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보석을 선택할 때 질병 치료나 영적인 힘 보유와 같은 주술적인 이유로 주로 선택되었습니다. 또한 부가 증가함에 따라 각국마다 장신구착용을 금지하기 위해 사치품 금지법을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인기 있은 장신구는 가운데 핀이 달려있는 고리형태의 브로치였습니다.중세 귀금속공예 양식 세 번째
13세기, 고대 카메오처럼 보석장식테를 멋지게 두른 브로치가 만들어졌고, 14세기에는 금 바탕에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고 오직 보석이 돋보이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보석으로 뒤덮인 브로치에 새로운 에나멜 기법으로 장식한 후기고딕장식은 자연주의를 표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귀금속 장신구공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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