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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형17세기 프랑스혁명을 시작으로 귀금속 장신구 문화에도 큰 변화가 시작되었는데요. 제국시대 아르누보시대 아르데코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귀금속공예의 양식과 역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제국시대 귀금속공예
1765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해 군주와 궁정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주얼리의 운명이 드라마틱하게 반전되면서, 프랑스에서는 장신구의 제작과 착용이 갑작스레 자취를 감추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1804년 나폴레옹이 제정을 선포하면서 파리의 명품산업 중에서도 보석산업의 경기가 되살아났습니다. 이 시기에도 다이아몬드 컷팅의 중심지인 암스테르담과 다이아몬드의 주요 생산국가인 브라질의 자리는 굳건했습니다.
보석컷팅기법으로는 브릴리언트컷이 가장 선호되었으며 로즈컷은 그다음으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주로 은에 세팅했는데 피부접촉면의 변색을 막기 위해 안쪽에 금을 대었고, 유색보석은 금에 세팅했습니다.
나폴레옹은 대관식왕관을 장식하기 위해 카메오를 선택했고 이듬해에는 프랑스 보석 엔그레이빙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이런 특별한 관심을 내비친 이유에는 엔그레이빙한 보석이 고대 그리스 로마제국과의 연관성을 명확하게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 일가는 다이아몬드와 카메오로 장식된 장신구, 또는 에나멜 골드 프레임으로 장식된 카메오 장신구를 즐겨 착용했습니다.
1814년 부르봉 왕조 당시 긴축정책이 시행되어 어느 누구도 다이아몬드를 수입할 수 없었고, 왕실 세공품조차도 정교했지만 준보석으로 적정가격에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 얄팍한 금에 준보석을 세팅하였습니다.
1865년경 이후에는 물뿌리개, 세면대 같은 독특하고 기발한 장신구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842년 영국에서는 자사의 새로운 장식문양이나 기술을 다른 회사에서 복제하지 못하도록 권리를 보호해 주는 저작권 법이 도입되었습니다. 특허청에 디자인이 등록되었고 제품마다 회사이름과 등록일자를 다이아몬드 마크로 표시했습니다.
미국은 19세기 중반까지 장신구에 비교적 무관심한 편이었고 대부분의 장신구는 유럽에서 수입해 오는 실정이었습니다. 1837년에 설립된 뉴욕의 티파니도 처음에는 수입품만을 판매했습니다. 직접 금장신구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은 1848년경부터인데, 티파니는 당시 불안정한 정치상황 때문에 다이아몬드 가격이 하락한 파리에서 다이아몬드를 대량으로 구입함으로써 급격히 부상했습니다.아르누보시대 귀금속공예
1900년경, 장신구는 세 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형식 성이 강조된 화려하고 포멀 한 다이아몬드 장신구
2. 유럽의 진보 미술계가 유색보석과 에나멜을 사용해 탐구한 자유로운 형태의 아르누보 양식
3. 영국 전통 공예의 부흥과 기계화에 대한 반작용
아르누보 운동은 당시 미술계를 기반으로 유럽 전통 미술에 반대되는 예술적 경향을 확립하려는 움직임이었습니다. 특히 유연하고 흐르는 듯한 자연의 형태(담쟁이덩굴과 식물의 형태를 연상시킴)에서 패턴을 가져와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했습니다. 이 아르누보운동은 보는 것만으로도 놀랍도록 매혹적인 섬세한 주얼리를 탄생시켰습니다. 대부분은 준보석이나 저렴한 재료로 만들어져 더 비싼 제품에 필적하는 색상과 질감 효과를 만들어냈습니다. 파리 까르띠에의 화환 디자인은 최고 대표적인 양식입니다.
아르누보 장신구 특징은 매우 섬세한 에나멜 작업을 꼽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예는 금속성 배경이 없는 섬세한 스테인드글라스 효과를 창출하는 고난도의 플라주르(plaajour)가 가장 이상적인 예시입니다. 이로써 예술성이 가미된 장신구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 시대를 주도하던 작가들이 방향을 돌려 새로운 표현미학을 찾아가면서 아르누보의 인기가 수그러들기 시작했습니다.아르데코시대 귀금속공예
1910년경부터 장신구에 일찍이 등장한 아르데코 스타일은 반복되는 기본 형태, 지그재그 같은 기하학적 선으로 펼쳐졌으나 정점에 도달한 시기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사이였습니다. 아르데코 양식은 주얼리의 조화를 이루는 뛰어난 안목과 완벽한 보석세팅 기술을 바탕으로 최상의 주얼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주로 벨트와 모자, 어깨를 장식한 브로치의 크기가 작아지는 현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양식화한 나무나 꽃바구니 형태의 브로치 또는 오닉스나 수정고리를 중앙에 두고 옆면에는 다이아몬드를 장식한 마름모꼴 또는 막대모양으로 만든 브로치 디자인이 매우 독특했습니다. 1939~1945년까지 유럽의 보석산업은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거의 정체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대기업은 재세팅 외에도 지속적으로 새로운 작품을 출시하였습니다.
1960년대 이후 귀금속공예
1960년 이후 장신구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장신구에 대한 틀에 박힌 관념을 벗어나 생소한 소재와 새로운 형태를 선보이며 새로운 디자인과 아이디어는 서로 경쟁하며 창조해 나가고 있습니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의 초에는 끊임없이 신소재와 다양한 재료들이 귀금속공예 영역에 발을 들이면서 작가들은 부드러운 형태를 만들 수 있는 섬유등의 직물에 눈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현대의 귀금속 공예는 획일화된 양식에 얽매이지 않고 평면이나 입체, 자연주의와 초현실적 표현 등 다양한 연출과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습니다.'귀금속 장신구공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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